영화 '변산'은 '동주', '박열'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준익 감독의 작품입니다.
꿈을 향해 달리는 청년 학수 역에는 깊이 있는 연기력의 배우 박정민이, 그의 곁을 지키는 선미 역에는 따뜻한 존재감의 배우 김고은이 출연하여 탁월한 연기 앙상블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고향과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한 복잡한 감정들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로, 한 편의 서정시 같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1. " 학수야, 너 랩 할 때 사투리 막 튀어나오는거 알지? ". "혹시 고향이..?". - 심사위원. " 서울이요! " - 학수
서울에서 래퍼의 꿈을 키우는 청년 학수.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고향의 흔적에 학수는 애써 외면합니다.
랩 가사에 묻어나는 사투리, 무심코 내뱉는 억양 하나까지도 억지로 지워내려 하죠.
고향에 대한 기억은 아프고 힘든 기억밖에 없기에 ,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완벽하게 새로 태어나고 싶지만,
고향 변산은 그에게 지우고 싶은 과거이자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느껴집니다.
그가 고향을 부정할수록, 스스로에게 더욱 단단한 껍데기를 씌우는 것만 같습니다.
2. "겁나게 오래간 만이네잉, 인자, 제대 한겨?". " 뭐, 저기, 뭐, 뇌졸증이라 하대?." 미안해서 어째야 쓰까잉~. 나 갈라믄 아즉 멀었어, 어?
아버지의 뇌졸중 소식을 듣고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고향에 간 학주.
10년 만에 마주한 부자의 대화는 낯선 타인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가움보다는 서로를 향한 비꼼과 냉담함이 묻어났죠.
익숙한 사투리 속에 담긴 뾰족한 말들은 따뜻한 정을 나누기보다는, 서로의 마음에 깊은 상처만을 남기는 듯합니다.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그들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멈춰버린 시계처럼 차갑고 공허한 상태 그대로입니다.
3. '내 고향은 폐항. 내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
고향에서의 아픈 기억을 뒤로한 채 서울로 돌아가려던 학수.
보이스피싱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발이 묶이는 상황에 처합니다.
진범이 잡힐 때까지는 고향을 떠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학수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마주합니다.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고향의 풍경과 잊고 싶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제는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답답하고 막막한 감정 속에서, 그의 발걸음은 서울이 아닌 고향의 땅에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4. 학수, 선미, 미경, 용대
고향 변산에 꼼짝없이 묶여버린 학수.
잊고 지냈던 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랫동안 그를 짝사랑해 온 밝고 엉뚱한 선미,
학수가 풋풋한 마음을 품었던 모두의 첫사랑 미경,
그리고 어린 시절 학수가 놀리던 동창이었지만 이제는 지역 건달이 된 용대까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지만,
이들의 관계 속에는 여전히 과거의 엇갈린 감정과 오해들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각자의 사연과 아픔을 품은 채 다시 마주하게 된 네 사람의 이야기는,
그들의 평온했던 일상과 고요했던 고향에 새로운 파동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5. "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 줄 알아요?. 아버지, 사람 패서 감방 갔을 때!"
아버지에게 절규하는 학수의 목소리에는 그동안 쌓아온 세월의 원망이 가득합니다.
"아버지 감방 갔을 때가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봄날"이었다는 그의 절규는,
한 소년이 겪었을 깊은 상처와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주죠.
폭력과 노름, 외도로 점철된 아버지의 존재는,
오히려 부재가 주는 평화로움보다 더 큰 아픔으로 각인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없던 그 시절이야말로 엄마와 자신에게 유일한 행복이었다는 그의 고백은,
부자간의 깊은 골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과연 이토록 깊은 상처를 품은 채 살아온 부자는,
켜켜이 쌓인 오해와 상처의 벽을 허물고 다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화해할 수 있을까요.
6. "비겁한 새끼야. 넌 , 너만 보지?. 언제까지 평생 피해다닐 것이여? 니는 정면을 안봐. 그런 니가 무슨 랩을 혀." " 넌 니 아버지랑 똑같은 새끼여.
선미의 따귀와 함께 터져 나온 그녀의 말들은 학수를 향한 답답함과 안타까움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녀의 눈에 비친 학수는 언제나 도망치기 바쁜, 겁 많고 비겁한 모습이었죠.
아픈 과거와 아버지, 그리고 고향의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려 하지 않고,
늘 회피하기만 하는 학수의 모습에 선미는 진심으로 화가 났던 것입니다.
특히, "너는 네 아버지랑 똑같은 새끼여"라는 말은 선미가 학수에게 던지는 가장 아픈 비수였습니다.
학수가 평생 동안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이 바로 아버지와 똑같다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선미의 거친 행동은 과거와 현실을 회피하는 학수에게,
이제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삶을 직시하라는 진심 어린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7. " 장엄하면서도 이쁘고, 이쁘면서도 슬프고..."
" 슬픈 것이 저리 고울 수 만 있담"
" 더이상 슬픔이 아니겄다 생각하면서, 넋을 잃고 보는디."
" 문득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자는 언제부터 저 무덤에 앉아, 혼자 노을을 보아 왔을까?
" 그날부터 나도 노을을 사랑허기 시작혔고, 작가가 되겠다고 맘 먹을것도 그때부터 여."
8. " 그래, 펀치는 그만하면 됐어." "너 또 밟히면 평생 등신으로 살게 된다. 그놈하고 정리하고, 아비하고 정리하자"
평생 아들의 삶을 외면했던 그가 해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과도 같았죠.
아들을 향해 던지는 그의 거친 말 속에는,
굴복하고 좌절하며 살지 말고 모든 어려움에 맞서 싸워 이겨내라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었습니다.
비록 투박하고 서툰 방식이었지만,
그것은 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진심이었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학수는 용대와의 마지막 결투를 준비하는데.....
9. 마무리하며
영화 '변산'을 보고 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유쾌한 웃음 속에 깊은 감동을 숨겨둔 이 작품은,
고향을 등졌던 한 청년이 아픈 과거와 마주하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고향이란 단어는 때로 벗어나고 싶은 상처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잔잔히 보여줍니다.
아픈 과거마저 끌어안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여정,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10. 변산 주변 가 볼 만한 곳
1. [ 내소사 ]
내소사는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즈넉한 사찰입니다.
사찰로 들어서는 600m의 아름다운 전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일상의 번잡함은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지죠.
고즈넉한 풍경과 숲이 주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롯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 [채석강]
채석강은 오랜 세월 파도에 깎여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한 절경을 자랑합니다.
강인한 바위 절벽과 부서지는 파도가 어우러진 풍경은 자연이 빚어낸 위대한 예술처럼 느껴집니다.
복잡한 마음을 비워내고, 해 질 녘 붉은 노을 아래 깊은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3. [격포항]
격포항은 변산의 주요 항구이자, 영화의 감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낭만적인 해안 풍경과 함께 어우러진 포구의 정취는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죠.
특히 서해의 아름다운 해 질 녘 풍경은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할 만큼 황홀합니다.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보며 영화의 여운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