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무주상보시'를 살아낸 사람 — 진주의 김장하 선생을 따라 걷다

 스승의 날.

우리는 보통 교실 안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어떤 가르침은 칠판 위가 아닌, 조용한 골목과 이름 없는 손길 속에서 태어납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는 그런 진짜 가르침이 어떻게 삶을 통째로 관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한약 냄새가 은은히 스며 나오던 남성당 한약방그 출발점이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약값을 받지 않고도 묵묵히 치료하던 이곳은 그저 약을 짓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사람을 살리는 공간이었고, ‘베풂은 말 없이 하는 것’이라는 철학이 숨 쉬는 자리였습니다.




1.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그 삶의 다른 이름

“보시(布施)를 하되,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대상도 의식하지 말라.”

— 『금강경』

김장하 선생의 삶은 불교의 이 가르침,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스스로를 '도움 주는 사람'이라 말한 적이 없습니다.

받는 사람도 그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필요한 만큼 주고, 조용히 돌아섰습니다.


그의 삶은 선행의 연속이 아닙니다.

그건 진심에서 비롯된 실천이며, 시대를 건너는 가르침입니다.

그는 이름 없이 가르쳤고, 대가 없이 베풀었으며, 흔적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 흔적은 진주 전역에 남아 있습니다.


2. 진주라는 도시가 품은 김장하 선생의 시간들

1)🌿 남성당 한약방(2022.5.31 영업종료) — 침묵의 시작

진주성 인근의 골목에 위치한 남성당 한약방은 김장하 선생이 50년 넘게 자리를 지켰던 공간입니다.

한약 한 첩에도 사람을 향한 애정과 정의가 담겼고,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을 '도움'이 아닌 '책임'으로 여겼습니다.

이곳은 한국 현대사 속 정의와 양심의 쉼터였습니다.


2)🏫 명신고등학교 — 교육으로 이어진 사명

진주에서도 전통 깊은 교육기관인 명신고등학교는 김장하 선생이 세운 ‘기회의 공간’이었습니다.

학비 없이 공부할 수 있는 학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열린 문, 하지만 정작 선생 본인은 학교 운영이나 이사장직에서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이곳은 학생에게 가르침보다 존엄을 먼저 건넨 교육의 현장이었습니다.


3)🕯️ 형평기념사업회 — 정의의 뿌리를 기리다

1923년 4월 25일 진주에서 시작된 조선형평사의 형평운동.

그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선생은 형평기념사업회를 설립했습니다.

진주는 신분과 차별에 맞선 평등의 도시이며, 그 정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형평사의 형평운동: 조선형평사는 1923년 4월 25일 진주에서 창립된 한국 최초의 평등권 운동 단체로, 백정 등 천대받던 계층의 신분 차별 철폐를 목표로 활동했습니다.

"형평을 외친다!"는 구호 아래, 조선 사회에 깊게 뿌리박힌 신분제 잔재에 맞서며 인권과 사회 정의를 위한 근대 시민운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형평사는 단순한 계급 투쟁이 아닌, 모든 인간의 평등함을 외친 역사적 선언이었습니다.


3. 진주라는 도시를 걷는다는 것

진주를 걷는다는 건 그저 유서 깊은 도시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남긴 시간과 철학을 느끼는 여행입니다.

김장하 선생의 삶이 깃든 진주,그 곳에는 다음과 같은 여행지가 조용히 말 걸어옵니다.

1) 진주성

임진왜란의 역사와 더불어 지금은 평화로운 남강과 어우러지는 진주의 상징.

김장하 선생이 한약방을 두었던 골목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서,과거의 희생과 현재의 침묵이 조화를 이룹니다.

2) 촉석루 & 남강변

진주의 대표 풍경, 촉석루에서 바라보는 남강은 지금도 사색에 잠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됩니다.

김장하 선생이 매일 지나치던 풍경 속, 우리는 그가 지켜낸 사람들의 흔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3) 경남문화예술회관

진주 지역 문화의 중심지이자, 형평운동과 현대 인권운동의 정신이 예술로 승화되는 곳.

문화는 곧 교육이며, 선생이 전한 ‘사람다움’의 확장된 표현입니다.


4) 진양호 & 진주남강유등축제

진양호 주변 산책길은마음의 평온을 찾기에 좋은 공간입니다.

그리고 해마다 열리는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조용히 세상을 밝혀온 사람들의 빛이 되기도 합니다.

김장하 선생이 환하게 비추지 않았던가요.

‘나눔은 불꽃처럼 요란하지 않아도, 따뜻해야 한다’고.


4. 마무리하며 — 진주는 가르침을 품은 도시입니다

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스승이란 누구인가, 가르침은 어떻게 남는가.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던 그 땅에서 임진왜란, 1592년의 진주성 전투는 지금도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곳엔 이름보다 의지, 명성보다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의 조용한 영웅이 등장합니다.

베풂을 말하지 않고 실천한 사람, 김장하 선생.

다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걸었고, 그 자리가 결국 모두에게 빛이 되었습니다.

칼이 아닌 침묵과 실천으로 세상을 바꿔온 사람들이 묵묵히 지나간 도시입니다.

스승의 날, 우리는 다시 그 질문 앞에 섭니다.

말보다 삶으로 가르쳤던 한 사람, 그가 걸었던 진주의 골목은 교실이었고, 그가 앉았던 약방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던 배움터였습니다.

진주는 오래전부터 남해로 향하는 물길과 육로가 만나는 길목이었습니다.

김시민 장군과 백성들이 함께 지켜낸 성.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 약을 팔지 않고 마음을 건넨 사람,

그는 남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진주는 지켜낸 도시입니다.

그 길 위를 걷는 오늘의 우리도 그 침묵 속의 가르침과 마주하게 됩니다.

진주는, 여전히 누군가의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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