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단 한 사람을 그리라면, 나는 늘 당신을 그릴 겁니다.”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 속 이 대사는, 마치 오래된 정원에 피어난 모란처럼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 작품은 사극의 외형을 빌렸지만, 그 너머로 한국의 풍경과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낸 서정적인 여정처럼 다가온다.
화려한 사건보다 일상의 결을 따라 흐르는 서사는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여정의 한가운데에는 전통의 숨결과 자연의 호흡이 녹아든 다섯 공간이 있다.
이 글은 그 공간이 품은 시간과 감정,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삶에 건네는 조용한 메시지까지 함께 들여다보려 한다.
1. 보성 열화정(悅話亭) – 여인의 이름으로 지어진 정자
“내 이름을 붙인 정자가 있다면, 나는 영원히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릴 겁니다.”
열화정은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에 자리한 아담한 정자다.
고즈넉한 연못 위에 비친 초록의 반영, 정자의 휘어진 곡선은 마치 옥씨 부인의 한복 자락처럼 부드럽고 단정하다.
드라마에서는 옥씨 부인이 어린 시절, 글을 익히며 꿈을 키우던 공간으로 등장한다.
이곳은 실제로 조선 시대의 사대부가 자연을 벗 삼아 지혜와 마음을 닦던 정자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추천 코스: 열화정 → 조성녹차밭 → 율포솔밭해수욕장
보성은 차 향기 가득한 도시다.
열화정에서 마음을 다스린 후, 한국 최대의 녹차밭인 대한다원을 걸어보자.
초록의 바다가 펼쳐진 그 길에서, ‘고요한 사랑’이 무엇인지 몸으로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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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다원 |
2. 보성 강골마을 – 기억을 품은 돌담길
“내가 걷던 이 돌담길엔, 언제나 당신의 발자국이 먼저 나 있었소.”
강골마을은 드라마에서 옥씨 부인이 첫사랑을 떠올리며 걷던 장면에 등장한다.
낮게 쌓인 돌담과 비탈진 골목길은 시간이 만든 서사시 같다. 특히 마을 뒤편의 고샅길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이곳은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통 마을이기도 하다.
느림의 미학을 간직한 보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고 싶다면, 강골마을의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묵어가길 권한다.
3. 강릉 선교장 – 사랑을 품은 고택의 침묵
“사랑은 말보다 기다림으로 완성되는 것이오.”
선교장은 300년 역사를 간직한 사대부 고택이다.
‘옥씨부인전’ 속에서 두 주인공이 다시 마주한 장면, 그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누각 위에서 바라보는 연못과 정원, 고요히 내려앉은 기와지붕 아래의 침묵은 이별보다 더 깊은 감정을 안긴다.
이곳은 조선 상류층 여성들의 삶의 궤적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들은 그늘에 있었지만, 그늘에서 가장 밝게 빛났다.
주변 명소: 강릉 오죽헌, 안목해변 커피거리
역사와 감성이 어우러진 여행을 원한다면 선교장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오죽헌에서 신사임당의 자취를 따라가 본 뒤, 바다의 향기로 하루를 마무리하자.
4. 연천 재인폭포 – 운명의 굉음, 숨은 사랑의 언어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과 맞설 이유도 없었을 것이오.”
드라마 후반, 옥씨 부인이 깊은 결단을 내리는 장면에서 등장한 재인폭포. 이곳은 단순한 자연의 절경을 넘어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절벽 위로 쏟아지는 물줄기와 협곡의 울림은 사랑보다 더 거대한 의지를 상징한다.
실제로 재인폭포는 DMZ 근처에 위치해 분단의 역사와 자연의 경계가 맞닿아 있는 곳이다.
5. 논산 반야사 – 내면의 기도를 올리는 곳
“당신을 향한 나의 생각이, 기도라면 그 끝은 언제나 반야일 것입니다.”
논산 반야사는 천년의 세월을 품은 고찰이다.
전각마다 걸린 목판과 사리탑, 고요히 앉은 부처의 시선은 인간의 욕망을 내려놓게 만든다.
‘옥씨부인전’에서는 이곳이 여주인공이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내면을 정화하는 장소로 등장한다.
보성에서 논산까지는 약 1시간 30분 거리. 차로 이동하면 남도와 충청을 잇는 하루 여행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 논산 반야사는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천호산 자락에 위치한 천년 고찰로, 백제 무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지혜의 절’이라는 이름처럼 불교 수행과 정신적 안식을 위한 공간으로, 대웅전과 석등 등 조선 시대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고즈넉한 산책길은 사색과 휴식을 위한 명소로, 특히 봄과 가을에 많은 이들이 찾는다.
반야사는 자연과 고요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장소로, 오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6.🔍 보성과 논산, 함께 떠나면 더 좋은 이유
보성은 열화정과 강골마을 외에도 볼거리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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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조정래 작가의 소설 세계를 입체적으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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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재 전망대: 드넓은 다원과 산 능선을 한눈에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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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포해수욕장: 해수녹차탕으로 유명한 힐링 스폿
논산 또한 반야사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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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장군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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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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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정호 출렁다리 등을 포함해 고즈넉한 전통과 풍경이 가득하다.
7. 마무리하며: "옥씨부인전"의 장소는 배경을 넘어 이야기의 본질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 다섯 공간은 ‘옥씨부인전’의 감정을 이루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다.
정자에서 시작된 사랑, 돌담길의 기억, 고택의 침묵, 폭포의 울림, 절의 기도까지.
이 장소들은 단순히 배경을 넘어, 그 자체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감정을 전달한다.
우리는 이 공간들을 걸으며,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서 피어나고,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 다를지라도, 이 길 위에서 우리는 그 무엇보다 깊은 인연을 느낄 것이다.
질문을 안고 걷는 여행. 그것이 ‘옥씨부인전’이 남긴 진짜 유산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사랑을 기억하는 곳, 바로 그곳으로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