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맛은 기억과 닮았어요. 어떤 날, 누구와, 무엇을 나눴는지."
드라마 〈당신의 맛〉 1화, 모연주(고민시)의 이 대사는 단숨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바삭한 감자전 하나에 유년의 풍경이 떠오르고, 젓가락 사이로 흐르는 된장국의
온도는 오래된 안부를 건넨다.
그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ENA 월화드라마 〈당신의 맛〉은
전주를 무대로, 우리가 잊고
지낸 ‘한국의 맛’을 되살린다.
1. 모연주와 한범우 – 기억과 미각의 경계를 걷다
모연주(고민시)는 간판도, 메뉴도 없는 원테이블 식당 ‘정제(淨齊)’의 셰프.
그녀는 기억을 요리한다.
한범우(강하늘)는 대기업 식품 회장의 아들이자, 전통의 가치를 이해하려는
인물.
"당신은 재료를 살리려 하지 않아요. 기억을 꺼내려 하죠."
그의 이 말은,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이라는 정의를 새로 쓰게 만든다.
이 둘이 마주 앉는 식탁 위로 전주의 풍경이 스민다.
전주는 그저 배경이 아니라, 맛과 정서의 기원이 된다.
2. 전주, 한국의 맛과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도시
전주는 전라북도의 중심도시로,
백제의 옛 수도였던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역사와 예술, 그리고 ‘한식의 원형’이 공존하는 도시다.
서울과 KTX로 2시간 남짓 연결되며, 전주국제영화제와 한지문화축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로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특히 전주는 전주비빔밥과 전통주, 한옥마을 등 ‘맛의 도시’로 손꼽히며 음식, 공간, 사람 사이의 정서적 연결이 깊은 도시다.
한국적인 삶의 미학과 전통이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곳.
〈당신의 맛〉이 전주를 선택한 것은, 음식이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이 삶을 이루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1) 전주한옥마을 – 모연주의 식당이 있을 법한 골목
고요한 골목 안, 낮은 기와지붕 아래 숨어 있는 작은 식당.
연주의 ‘정제’가 있다면 이곳 어딘가일 것이다.
한옥마을은 전통과 현대가 스며든 미각의 성소이자, 시간과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2)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 젊은 감각의 기억을 요리하다
한범우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주는 이곳과 닮았다.
전통시장 위 2층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한 청년몰.
‘맛의 재해석’이란 테마를 젊은 셰프들이 실험하며 기억보다 감각을 자극하는 맛의 실험실이 된다.
3) 전주향교 – 마음의 온도를 낮추는 시간
모연주의 레시피에는 철학이 있다.
그 철학은 향교의 고요함처럼 담담하다.
비 오는 날, 전통 기와 아래 서성이는 순간, 음식의 본질은 결국 정성과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4) 오목대 – 감정의 정점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
두 주인공의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에 어울리는 장소.
"나는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진짜 밥을 먹었어요."
한범우가 이런 말을 꺼냈다면, 그건 오목대였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맛과 마음이 모두 내려다보인다.
5) 전주 전통술박물관 – 잊혀진 미각을 되살리는 곳
〈당신의 맛〉은 발효된 시간의 의미를 짚는다.
전통술박물관은 우리가 잊은 미각의 유산을 되살리고 모연주의 ‘막걸리 리덕션 소스’ 같은 섬세함과 조우한다.
맛은 혀보다 마음에 스미는 것임을 일깨우는 장소.
3. ‘맛’은 결국 사랑의 언어다
물끄러미 바라본 밥상 위 된장찌개의 김 속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이 피어오릅니다.
〈당신의 맛〉이 주는 감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음식은 끼니를 넘은 언어입니다.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먹었느냐에 따라 같은 음식도 전혀 다른 맛이 됩니다.
그래서 “당신은 내게 밥이었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아요.”라는 대사는, 우리가 왜 어떤 맛을 기억하고, 다시 찾고, 결국 그리워하게 되는지를 가장 명료하게 말해줍니다.
〈당신의 맛〉은 음식이라는 언어를 통해 관계와 사랑, 그리고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어 보여줍니다.
그 무대가 전주라는 것은, 필연처럼 느껴집니다.
전주는 '맛'이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입니다. 한옥의 처마 아래로 퍼지는 된장의 구수한 향, 정갈한 상차림 위로 조용히 떠오르는 지난날의 감정들. 이 모든 것이 전주의 ‘맛’을 이루는 요소입니다.
전주는 미각을 넘어 기억을 건드리는 도시입니다. 당신이 잊고 있던 ‘맛의 기억’을 꺼내어, 그것이 삶의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조용히 말해줍니다.
〈당신의 맛〉은 전주의 품격과 감성을 다시 일깨웁니다. 그 맛은 혀끝이 아니라 마음에 남습니다. 그리고 그 남겨진 마음은, 누군가를 사랑했고 또 사랑받았던 순간들을 다시 떠오르게 합니다.
음식은 결국, 사람이 남기는 가장 따뜻한 기록입니다. 전주는 그 기록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