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장소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1987년, 대한민국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한 대학생의 죽음이 있고, 그 죽음을 숨기려는 권력이 있었으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몸을 던진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피와 외침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열었다.

영화 『1987』은 그해의 진실과 분노, 그리고 희망을 기억하게 만든다.

지금 이 글은, 그 발자국을 따라가며 우리가 오늘 어떤 나라를 딛고 있는지 되새기는 여정이다.



1. 남영동 대공분실 – 진실이 갇힌 공간에서, 기억을 지키는 기념관으로

남영동 대공분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공식 답변

서울 용산구 한복판, 지금은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뀐 이곳은 과거 치안본부 대공분실이었다.

이곳 509호실에서, 22살 대학생 박종철은 물고문을 당한 끝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죄가 없었다. 

친구의 소재를 모른다는 이유 하나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문이 잠기는 소리, 물이 흐르는 수도꼭지, 바닥의 배수구까지.

이제 그곳은 고통을 기억하는 박물관이자, 국가폭력의 실체를 증언하는 교육의 현장이다.

그날의 고문실은, 지금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 위치: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 관람 안내: 사전예약제 / 해설사 동행 가능
✔️ 상징적 의미:

  • ‘인권의 부재’에서 ‘인권의 성찰’로 바뀐 공간

  • 과거의 외침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만든 역사의 공간


2. 목포 연희네 슈퍼 – 평범함 속에서 피어난 깨어남의 순간

연희네슈퍼

“무서워도 해야 되는 일이 있어요.”

전남 목포, 골목의 끝.

낡은 슈퍼 하나 앞에 서 있는 연희는 세상을 ‘멀리서만’ 바라보던 소녀였다.

그러나 어느 날, 한 남자가 조용히 전단지를 건넨다.

“무서워요? 당연히 무섭죠. 근데 무서워도 해야 되는 일이 있어요.”

– 이한열(강동원)

짧은 대화, 하지만 이 말은 연희의 마음 한가운데 조용히 꽂혔다.

그 말은 거대한 진실보다 더 강했다.

누군가를 움직이는 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두려움을 뚫고 나온 한 사람의 용기일지도 모른다는 것.


📍 연희네 슈퍼 – 그 대사가 남겨진 장소

위치: 전남 목포시 용해동

현재는 시민에게 개방된 ‘영화촬영지’로 보존되어 있으며, 김태리와 강동원의 그 짧은 장면을 떠올리며 찾는 관객들이 많다.

🧭 주변 관광지 추천:

  • 목포근대역사관: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

  • 유달산, 갓바위, 목포해양유물전시관: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인기


3. 부산 해운정사 – 불법을 알린 신념, 종교의 이름으로 진실을 외치다

부산해운정사
“기록해야 합니다. 끝까지 써야죠. 누가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 윤상삼 기자(이희준)

부산 해운대의 조용한 절, 해운정사는 영화에서 정의로운 교도관이 기자에게 정보를 넘기던 장소다.

실제 해운정사는 민주화운동과 직접 관련된 장소는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는 진실을 외부로 전달하는 거점 공간으로 기능했다.

⛩️ 위치: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로

💡 상징적 의미:

  • 진실은 ‘조용한 공간’에서 자라고,

  • 행동은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

🌊 주변 관광지:

  • 해운대 해수욕장, 동백섬, 부산영화의 전당 → 역사와 관광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


4. 통영 충무교회 – 순수한 믿음이 분노를 품다

충무교회

영화 『1987』 속에서 연희가 부모님의 죽음 이후 마음을 다잡고 희생자 유가족의 편지 낭독을 듣는 장소가 바로 충무교회다. 

실제 이 교회는 경남 통영에 위치해 있으며, 영화의 흐름상 ‘진실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장소’로서 큰 울림을 준다.

위치: 경남 통영시 충무동

📌 상징적 의미:

  • 종교가 정치와 만나야 할 때는 바로 ‘인권이 무너졌을 때’

  • 말 없는 기도 속에서도 사회는 움직인다

🧭 관광지 추천:

  • 동피랑 벽화마을, 통영케이블카, 세병관, 이순신공원 → 가족, 친구와 함께 둘러보기 좋은 역사와 문화의 도시


5. 명동성당 – 그날의 피맺힌 외침이 하늘로 닿았던 곳

명동성당

“지금은 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겨야 합니다.”

– 김정남(설경구)

1987년 6월항쟁의 마지막 장면, 수많은 시민들이 명동성당으로 몰려들었다.

실제로도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마지막 피신처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1987년 6월 9일 이후 수많은 시위대가 이곳으로 모였고, 성당은 경찰의 진입을 막으며 ‘성역’이 되었다.

🕊️ 위치: 서울 중구 명동길 74

📌 상징성:

  • 종교가 시민을 품은 역사

  • 민주주의가 지켜낸 피의 성소

🎯 관광 팁:

  • 명동 거리 쇼핑, 한옥카페,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등과 연계 추천


  6. 그해, 그 사람들 – 우리가 오늘 누리는 자유의 대가는 ‘기억’이다

박종철, 이한열, 김근태... 

그 이름들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친구이며, 시민이었다.

그들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용기를 냈을 때의 역사다.


우리가 오늘 투표를 하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이 모든 것은 그들의 피와 외침이 만든 기적이다.

1987년의 민주영웅들이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너는 지금의 자유를 어떻게 쓰고 있는가?”

“다음 세대에 어떤 나라를 남겨주고 싶은가?”

그 질문 앞에, 우리는 진심으로 대답해야 한다.

기억하고, 배우고, 행동하는 국민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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