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가족’, 울산과 백양사에서 다시 쓰는 가족의 의미

“사람은 기억으로 사는 거야. 그게 가족이든 상처든, 결국은 다 안고 가는 거지.”

영화 <대가족> 속 주인공 문석(이승기)의 이 한마디는, 단지 피를 나눈 사람들만이 가족이라는 좁은 개념을 넘어서, 시간을 공유하고 마음을 맞대며 살아온 관계의 본질을 되묻게 만든다.

 ‘공간’이야말로 가장 깊고 조용하게 가족의 본질을 이야기해주는 목격자라고 생각했다. 

산업과 자연, 기억과 현대가 공존하는 이 땅 울산은,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선과 기묘하게 겹쳤다.

1. 언양 성당 – 기억의 출발점

언양 성당은 울산 울주군의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영화 속에서 보육원으로 등장합니다. 

이곳은 문석이 가족의 존재와 그 기억을 마주하는 첫 번째 장소입니다. 

성당의 고요한 분위기는, 주인공이 자신에게 닫혀 있던 기억을 열어가는 시작점이 됩니다.

“여기가 시작이었나 봐요. 아무도 기억하지 않던, 내 첫 가족.”

이 대사는 단지 장소와 시간의 연결을 넘어서, 기억의 본질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잃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기억을 마주해야 합니다. 

성당은 문석이 과거와 화해하는 공간으로, 기억을 통해 '자아'를 찾는 과정의 상징입니다. 

종교적 상징이 내포된 성당은, 인간이 자아와의 만남을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고백과 회개, 그리고 용서를 암시합니다.


2. 대왕암공원 – 어머니의 얼굴을 닮은 바다

대왕암공원은 울산 동구에 위치한 공원으로, 문석이 어머니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원의 바다와 절벽은 문석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인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 바다는 그가 잃어버린 가족을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찾을 수 있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바다는 닿을 수 없지만, 늘 곁에 있었어요. 어머니란 그런 존재 아닐까요?”

이 대사는 부재와 존재의 역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지만, 그 존재 자체가 늘 그 자리에 있었음을 느끼게 합니다. 

어머니의 존재는 그와 같이 비록 물리적으로는 멀지만, 깊은 정서와 기억 속에서 여전히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인간 존재의 진리로, 우리가 상실한 것들이 사실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져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3. 태화강 국가정원 – 흐름 속에 남은 관계

태화강 국가정원은 울산 시민들이 자주 찾는 휴식처이며, 영화에서 문석이 가족과 함께 걷는 장면의 배경이 됩니다. 

이 정원은 자연의 흐름을 반영하는 공간으로, 시간을 공유하며 이어지는 가족 관계를 상징합니다.

“다 흘러가도, 어떤 건 강물처럼 다시 돌아오잖아요.”

이 대사는 시간과 흐름의 불변성을 상징합니다.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듯, 지나간 시간과 인연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가족의 의미도 마찬가지로, 어떤 순간은 사라지고, 또 다른 순간에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강물처럼 흐르는 삶 속에서, 관계는 결코 끊어지지 않고, 때로는 강물을 거슬러 흐르는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4.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 기억의 박제, 혹은 해방

울산 장생포는 한때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장소로, 지금은 고래문화마을로 변모해 있습니다. 

이곳은 영화 속에서 문석이 자신의 과거를 직시하고, 기억 속 상처를 치유하는 장면으로 등장합니다.

“아무리 박제해도, 고래는 다시 헤엄치지 않아요. 가족도 그런 건가요?”

이 대사는 상실과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고래는 한때 존재했지만, 박제된 후에는 다시는 바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석은 박제된 고래를 보며, 과거의 상처가 영원히 고립된 채 남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가족 또한 그 존재가 사라지면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 기억은 언제나 우리 안에 남아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내적 해방을 맞이할 수 있다는 교훈을 전달합니다.


5. 울산대공원 – 새로 만든 가족의 무대

울산대공원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문석이 새로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이 공간은 가족을 단지 혈연이 아닌, 함께 시간을 나누고 이해하는 관계로 다시 정의하는 장면의 배경이 됩니다. 

울산대공원의 자연 속에서 문석은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가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의미의 가족을 발견합니다.

“이게 가족이라면, 난 처음으로 가족을 갖는 거네요.”

이 대사는 가족의 정의를 재조명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가족이란 피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시간과 감정 속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대사는 인간 존재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며, ‘가족’을 단지 혈연적 관계가 아닌, 삶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로 풀어냅니다.


6. 백양사 –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길

백양사는 전남 장성에 위치한 사찰로, 문석이 자신을 돌보고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내면의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단풍이 물든 이 사찰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문석이 스스로와 마주하며 ‘자기 용서’를 얻는 장소입니다.

“누구에게도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나를 용서해야 해요.”

백양사는 내적 평화와 자아의 화해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문석은 이곳에서 자신을 용서하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와 평화의 시작임을 의미합니다. 

백양사는 이 메시지를 비로소 이해하는 장소로, 가족이라는 개념이 단지 외부의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와의 조화를 이루는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7. 공간이 전하는 가족의 진실

<대가족>은 '피의 가족'이 아니라, '기억과 시간의 가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울산과 백양사라는 공간이었다.

가족이란 때로는 멀리 있고, 때로는 낯설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머문 풍경과 걸었던 길, 그 안에서 흘렸던 눈물과 웃음이 쌓일 때, 비로소 가족이라는 이름은 완성된다.

당신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는가?

혹은, 지금 함께 걸어가는 그 길이 가족이 되는 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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