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아파트 층간 소음은 인간의 문제라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84제곱미터〉는 이 한 줄의 대사로 대한민국 청년들의 오늘을 날카롭게 꿰뚫는다.
주인공 우성(강하늘)은 모든 것을 걸고 84㎡ 아파트를 샀지만, 그 공간은 곧 심리적 감옥으로 바뀐다.
그가 듣는 ‘소리’는 단순한 층간 소음이 아니다.
그건 불안의 소리이고, 계층의 소리이며, 관계의 파열음을 상징한다.
1. 〈84제곱미터〉: 현실의 미로, 심리의 탑
“저는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요… 여기가 제 집이니까요.”
이 대사는 영화 초반, 우성이 주민 대표에게 불만을 토로하던 중 한숨처럼 내뱉는다.
공포 속에서도 그는 그 공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것이 ‘내 집’이기 때문이다.
이 집은 청년에게 단지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다.
집을 소유한 순간, 그는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은 곧 무너진다.
이 대사는 소유가 자유가 아님을, 소유가 때로는 고립임을 증명하는 서글픈 자기최면이다.
2. “전세로 사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예민해?”
이웃이 무심히 내뱉는 이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이 말에는 소유자와 비소유자 사이의 위계가 뚜렷이 드러난다.
아파트의 위층과 아래층은 단순한 층수 차이가 아니라, 계급의 상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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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은 권리를 누리고, 아래층은 존엄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공감 없는 사회에서는 존엄조차 예민함으로 치부된다.
이 짧은 대사는 한국 사회의 부동산 계층화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3. “여긴, 우리끼리의 규칙이 있어요.”
주민 대표 은화(염혜란)는 문제 해결보다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더 강조한다.
그 질서란 무엇인가? 입주 10년차와 갓 이사 온 사람 사이의 암묵적 위계, 분양자와 전세 세입자 사이의 침묵의 경계다.
이 대사는 영화의 축소된 세계 안에서, 현대 사회의 은밀한 규칙, 즉 배제의 원리를 드러낸다.
우성은 질문하지 않는다.
그는 규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는 외부인이고, ‘기득권 입주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4. “다 들리잖아요. 생각까지도요.”
이 대사는 극 후반부에서 우성이 현실과 망상의 경계가 무너질 때 등장한다.
층간 소음은 단지 위에서 들리는 발소리가 아니다.
이 소리는 우성이 억눌러온 불안과 분노, 자책과 고립감의 메아리다.
영화는 물리적 공포보다 심리적 불안을 강조한다.
이 한 마디로, 관객은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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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듣는 소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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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누군가의 발소리인가, 내 안의 무너지는 소리인가?
5. “우리 다 같이 사는 곳이에요. 그걸 이해해야 해요.”
은화는 우성을 타이르듯 말한다.
겉으로는 공동체적 언어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말은 ‘너 혼자 문제야’라는 배제의 선언이다.
공동체라는 말은 때로는 가장 강력한 배척의 언어가 된다.
이해를 강요하는 사회, 조용히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아파트 문화 속에서, 다 함께 산다는 말은 종종 ‘조용히 살아라’는 지침으로 바뀐다.
이 대사는 한국형 공동주택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아파트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조용히 살아야 인정받는’ 정서적 감옥이다.
6. 84㎡의 심리적 고립 – 소유는 자유인가, 족쇄인가?
〈84제곱미터〉는 넓은 공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좁아지는 시야, 닫히는 문, 더 선명해지는 소리, 그리고 격해지는 갈등을 보여준다. 공간이 클수록 심리적 고립은 더 강해진다.
‘내 집 마련’은 한국 청년들에게 하나의 성취이자 탈출구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영끌로 집을 산 순간, 그곳은 보호막이 아닌 감옥이 된다. 서울시청년정책센터 보고서(2023)에 따르면, **청년 주택소유자 54%는 '내가 집을 샀지만 외로움이 더 커졌다'**고 응답했다.
이 영화는 소유의 환상을 해체한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통과의례’**일 뿐이며, 진짜 문제는 소음이 아니라 그 안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직면하게 만든다.
7. 마무리하며 - 84㎡, 그곳에 집은 없었다
〈84제곱미터〉는 범인을 특정하지 않는다.
대신 소리의 근원을 추적한다.
그것은 천장에서 들리는 발소리일 수도, 마음속 균열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일 수도 있다.
당신이 참고 있는 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당신이 내고 있는 소리는 누군가에게 어떤 두려움으로 남아 있는가?
“결국 아파트 층간 소음은 인간의 문제라구.”이 대사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외면한 진실이다.
공간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문제다.
〈84제곱미터〉는 한국 사회의 청년, 세입자, 영끌 구매자, 그리고 ‘예의’를 가장한 침묵의 폭력을 묵인하는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공간의 소유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는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우성이가 84㎡ 속에서 ‘소음’을 듣고 있다.
그 소리가 진짜 무엇인지, 이제 우리가 대답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