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는 경기장이 아닌 인생 위에서 펼쳐진다."
2025년 여름, SBS와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 중인 드라마 《트라이: 우리는 기적이 된다》는 단순히 스포츠 드라마로 분류되기엔 뭔가 더 깊다.
카메라는 운동장을 뛰는 선수들을 따라가지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공을 쥐고 달리는 한 사람의 인생,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코치의 지난날이다.
드라마 속 한 장면. 전 국가대표였던 코치 주가람(윤계상)이 럭비공을 바라보며 말한다.
“날아오는 럭비공을 한 번이라도 잡아본 사람은 안다.
럭비의 득점은 트라이다.
럭비는 시도와 도전의 과정이다.”
이 대사는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응축한 한 문장이다.
트라이(TRY)라는 스포츠 용어는 점수를 얻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시도, 도전, 그리고 실패와의 화해를 전제로 한다.
《트라이》는 ‘점수’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럭비가 아니라, 우리 삶에도 정확히 적용되는 이야기다.
1. 2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은 고교 럭비부의 현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는 화려한 승리의 순간이 아닌, 쓰라린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들에 쏟아진다.
한양 체육고 주장 윤성준(김요한)은 주가람 코치에게 묻는다.
“감독님이 뭘 해줄 수 있는데요?
대학 진학을 도와줄 수 있어요?
실업팀으로 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요?”
이 물음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현재의 선수들이 처한 구조적 한계를 통찰하는 고백이다.
대학 팀은 점점 줄고, 실업팀은 거의 없다.
럭비는 공식적인 종목이지만, 선수들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스포츠는 아니다.
현실은 냉정하다.
2024년 전국체육대회 기준으로도 럭비 종목 참가 팀 수나 선수 명단조차 명확히 공개되어 있지 않다.
참가하는 고등학교 팀은 전국에서 7~10개 남짓. 그마저도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 있다.
대학교 럭비부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실업팀은 OK금융그룹이나 군체육단 등 제한적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주가람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선수로는 실패했지만
너흰 실패하지 않게 도와줄게.”
이 대사는 코치와 선수 사이의 거리, 그 20년의 간극을 좁힌다.
선수였던 과거와 지도자인 현재가 만나는 지점.
이 말 속에는 과거를 뒤돌아보는 용기와, 미래를 지켜주고 싶은 책임감이 묻어난다.
2. 이기기 위해, 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드라마 《트라이》는 이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한 경기에서 진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지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이기는 날을 만든다.
주가람의 또 다른 대사.
“잘 지는 법도 배워야지.
이기기 위해선 지는 법이 중요하다.”
이 말은 단지 스포츠 기술에 대한 조언이 아니다.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회복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다.
한국의 럭비는 수십 년간 비인기 종목이었다.
KBS, MBC, SBS 등 메이저 방송에서는 정규 리그조차 중계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나 대한럭비협회의 자료에서도 럭비는 늘 마지막 페이지에 위치했다.
그러나 드라마가 조명하는 것은 ‘관심의 부재’가 아니라, 그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3. 경기 후반, 주원이 고개를 떨군 채 서 있는 순간
실수를 반복한 주원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팀의 흐름도 흔들린다.
그때 주가람 코치가 조용히 다가와 말한다.
“넌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나무라지 않는다.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 말은 명령이 아니라, 하나의 믿음이다.
“실수는 괜찮아. 멈추지만 않으면 돼.”
이 장면은 ‘트라이’라는 제목의 진심을 드러낸다.
지금은 비틀거려도, 진짜 경기는 이제부터라는 것을.
주원도, 팀도, 그렇게 조금씩 나아간다
4. 비인기 종목이 남긴 질문: “너는 어디서부터 뛰고 있니?”
《트라이》는 인기와 성공만을 쫓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는 묵묵한 시도자들을 비춘다.
그리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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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인생은 왜 이렇게 외면당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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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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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란 결국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드라마는 하나의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말한다.
“경기장에서 흥분하면 절대 안 된다.”
냉정함, 침착함, 꾸준함.
그것이 이기기 위한 진짜 준비다.
그것이 ‘시도’의 본질이다.
5. 시도를 응원하는 마음
럭비는 고된 경기다.
90분 내내 부딪치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과정을 보지 않는다.
점수만, 승패만 기억될 뿐이다.
《트라이》는 말한다.
트라이(TRY)는 득점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넘어져도 다시 시도하고, 실패를 배워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잊고 있던 ‘기적’이다.
경기장 안에서, 혹은 인생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당신이 럭비공을 움켜쥐고 있다면, 그건 이미 시도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모든 사진의 출처 : SBS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