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의 복수 누아르 〈광장〉 리뷰: 서로 공존하려면, 규칙을 지켜야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인가, 우리의 것인가

서로 공존하려면, 규칙을 지켜야 해.
소지섭이 연기하는 ‘남기준’은 이 대사를 뱉으며 방망이를 든다. 

그 무게가 법이든 조직이든, 혹은 양심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가 선택한 방식과, 선택의 결과가 이 도시에 어떤 균열을 남기는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광장〉은 액션을 앞세운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 정의의 사유화, 조직과 개인의 해체를 담아낸다. 

피 튀기는 전투 속에서 드러나는 건 육체의 분노가 아니라 정신의 결기다.

누구를 위해 복수하는가?

선택과 판을 주도하는 것은 누구인가?

이 시리즈는 복수극이라는 장르의 외피를 입고, 철저히 묻는다. 우리에게는 아직, 규칙이 존재하는가?


1. 죽은 동생과, 다시 살아난 본능

한때 조직 ‘주원’의 2인자였던 남기준(소지섭)은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조직을 떠났다.

하지만 11년 후, 그의 동생 남기석이 조직 내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기준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다시 어둠의 문을 두드린다.

칼도, 총도 없이.

말없이, 묵직하게.

그가 손에 쥔 건 야구 방망이 하나.

맞고 찢기고 부서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감정 없는 그 얼굴이다.

기준은 묻는다.

“내 동생을 죽인 건 누구지?”

줄거리 자체는 직선적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건 기준이 단지 복수를 향해 직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끊임없이 갈등한다. 

동생을 위해 조직을 다시 들쑤시는 것이 맞는가? 

그의 선택이 판 전체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예감, 그럼에도 “선택과 판을 주도하는 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그는 무너질 수 없다.


2. 등장인물 소개: 판을 움직이는 자들

  • 남기준(소지섭): 은퇴한 조직의 전설. 말보다 무서운 무표정. 철저히 계산된 복수를 위한 입장.

  • 이주운(허준호): 조직 ‘주원’의 현 수장. 질서와 위계의 마지막 상징. 기준의 귀환에 위협을 느낀다.

  • 구준모(공명): 젊고 공격적인 조직원. 시대가 바뀌었다고 믿지만, 실상은 폭력의 반복을 선도한다.

  • 남기석(이준혁): 기준의 동생. 조직에 깊이 몸담고 있었으며, 내부 갈등과 음모 속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그의 죽음은 남기준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며, 드라마 전체 서사의 기폭제가 된다.

  • 강진수 검사(조한철): 법을 입에 담지만, 실상은 이득의 계산자. 조직과 공권력이 뒤엉킨 무대의 또 다른 얼굴.


3. 공간과 카메라: 폭력의 진실을 비추는 앵글

〈광장〉은 말 그대로 '광장'이라는 공간 구조를 활용한다. 

복수는 골목이 아니라 광장에서 시작된다. 

숨을 곳이 없는 공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지는 공개 처형. 

이는 단지 연출의 묘미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폭력과 복수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공적 행위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액션은 압축적이다. 총보다 맨몸, 칼보다 방망이. 특히 슬로우 없이 일필휘지로 끝내는 로우 앵글 연출은 폭력을 낭만화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관객이 쾌감을 느끼기보다 ‘이 폭력이 과연 정당한가’를 자문하게 만든다.


4. 대사와 주제 분석

서로 공존하려면, 규칙을 지켜야 해.

이 대사는 조직 내부에서 기준이 던지는 말이지만, 사회 전체를 향한 경고다. 

검찰도 조직이고, 기업도 조직이다. 그들 사이에서 누가 규칙을 만들고, 누가 판을 주도하는가?

선택과 판을 주도하는 건 누구지?

기준은 한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복수가 사회 질서 자체를 되묻는 일이라는 걸 자각한다. 

그렇기에 그는 조직 수장과 검찰, 경찰, 그리고 자신까지도 망설임 없이 겨냥한다.


5. 복수 이후에 남은 것

〈광장〉의 결말은 전형적인 ‘승리의 피날레’가 아니다. 

기준은 살아남는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이전의 기준이 아니다. 

그의 주변은 초토화되고, 공존을 말하던 자들은 모두 무너진다.

그럼에도 시리즈는 말한다.

“득보다 실이 많은 이 판을, 왜 우리는 계속 돌리는가.”

기준이 남긴 것은 복수의 결과가 아니라 복수의 부조리성에 대한 고발이다.

검사도, 조직도, 정의도 결국 이득을 따지는 공조자들이며, 그 틈에 죽는 건 결국 진실을 좇는 자들이다.


6. 누아르 그 너머, 한국 사회의 그림자

〈광장〉은 단지 액션 누아르가 아니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합법적 폭력’과 ‘사적 복수’ 사이에서 흔들리는 정의의 윤곽을 고발한다. 

소지섭은 말이 없다. 하지만 그의 몸은 말한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식은 복수가 아니라, 진실의 드러냄이다.”

당신이 액션을 사랑한다면, 이 작품은 폭력을 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게 만든다.

복수를 사랑한다면, 이 이야기는 끝까지 물어올 것이다. 

과연 복수는 나를 위한 것인가, 우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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