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정의’의 변론이 시작됐고, 우리는 다시 묻는다.

 ‘진실은 법정 위에 서 있지 않다.

그건 결국,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디즈니+ 드라마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법정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변론’이라는 단어에 담긴 윤리와 양심, 그리고 사회가 저버린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밀도 있게 끌고 나간다.

그 속에서 튀어나오는 대사 한 줄 한 줄은, 우리가 외면해온 질문을 던진다.

법은 정말 정의를 말하는가?

진실은 언제나 이기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서 떳떳한가?



1.  “법이 진실을 말하게 해줄 줄 알았어요.”

– 노착희

냉철하고 야망 가득한 로펌 변호사 노착희는 공익 변호사로 내쳐지면서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그녀는 승소율 92%의 법률 천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진실이 아니라 판결만을 좇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대사는 법정의 본질을 묻는다.

우리는 종종 ‘법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은 숫자와 판례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는, 법이 진실을 외면하기도 한다.

노착희가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법조인이 아닌 한 인간의 무너짐이 보인다.

정의롭고 싶었던 마음과, 현실에서 타협했던 선택들 사이의 괴리.

우리 역시 그런 괴리 앞에 서 있는 건 아닐까.


2.  “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 좌시백

좌시백 변호사는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축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는 공익 변호사, 그리고 과거의 상처를 품은 인물.

그는 법으로 복수하지 않고, 진심으로 ‘듣는다.’

이 대사는 변론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만든다.

단순히 법정에서 이기기 위한 논리의 싸움이 아니라,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던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주는 일’이라는 걸.

좌시백이 택한 방식은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피해자의 고통을 이용하지 않고, 복수심에 젖지 않은 채 진실을 밝히는 방법.

그게 진짜 변론이고, 진짜 정의에 가까운 태도일지도 모른다.


3.  “우리가 지는 건, 정의가 없어서가 아니야. 사람들이 외면해서 그래.”

– 좌시백

좌시백의 이 대사는 드라마 전체를 꿰뚫는 핵심 문장이다.

법은 만들어졌고, 제도도 존재하지만—왜 진실은 자꾸 묻히는가?

그건 우리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척하며 고개를 돌리기 때문이다.

공익이라는 말이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점점 조용해진다.

불편한 진실 앞에서 침묵하는 순간, 정의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이 말은 현실 사회에 닿아 있다.

법정은 한정된 공간이지만, 진실을 외면하는 건 사회 전체의 문제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 책임이 결국 ‘우리 모두의 선택’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4.《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진실이란, 누군가를 바라보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이야기 끝에서 새로운 결론을 내지 않는다. 

정의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하지만 노착희와 좌시백의 변론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건, 그저 사건의 전말이 아니라 그 사건 안에서 울고 있던 한 사람이다. 

 이 드라마는 말한다. 

“변론이란, 누군가의 진실에 귀 기울이는 일”이라고. 이제, 우리도 변론을 시작해야 한다. 

이 드라마는 ‘진실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며, 시청자 스스로도 스크린 앞에서 조용히 ‘변론’을 시작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종종 법정이라는 공간에 모든 것을 맡기려 합니다. 

“법이 해결해줄 거야”라는 기대, “진실은 언젠가 이긴다”는 믿음.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믿음을 무너뜨리는 대신, 그 안에 숨겨졌던 고통받는 개인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노착희의 냉철한 시선 너머에는 ‘변호사’라는 직업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분열과 고뇌가 있고, 

좌시백의 고요하지만 뜨거운 눈빛 속에는 사회를 향한 책임과 연민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변론하고자 했던 대상은 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외면했던,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그 사람들의 진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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