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욕망과 공허의 공간들 – 『버닝』의 서울과 파주의 장소를 걷다

 “세상은 신비로 가득 차 있는데, 사람들은 신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 해미(전종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은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에는 현대 사회의 불안, 계급 격차, 청춘의 공허함이라는 정밀한 주제들이 불쑥 고개를 든다. 

하지만 그 메시지를 완성시키는 것은 결국 ‘공간’이다. 인물의 삶과 감정은 특정한 장소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공간은 관객의 기억 속에도 오래도록 불타는 상징으로 남는다.

이번 글에서는 『버닝』 속 인상적인 세 장소 – 비닐하우스가 있던 파주, 해미의 방이 있던 남산타워 뷰의 고시원, 그리고 이종수가 홀로 찾았던 수몰지 호수 – 를 중심으로, 그 상징성과 함께 관광객에게도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장소로 소개하고자 한다.



1. 파주의 비닐하우스 – 사라지는 존재들

“난 취미로 비닐하우스를 태워요. 일주일에 한 개씩.”
– 벤(스티븐)

이 장면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뒤흔드는 기점이자, 현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잊히는지를 은유적으로 말해준다. 

벤이 말한 '비닐하우스'는 실재하는 장소이자, 사회적 약자를 은폐하는 은유적 공간이다.

📍 실제 촬영지는 파주시 광탄면 일대.
넓은 들판과 희미하게 안개 낀 풍경 속, 외따로 놓인 비닐하우스는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와는 정반대의 고요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벤의 고급차가 도착하는 순간, 이 풍경은 계급 간의 간극을 무언으로 드러낸다.

🗺 관광 팁: 파주의 광탄면 일대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으며, 근처에는 '헤이리 예술마을'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 있어 하루 코스로 연계 가능하다. 잊혀져 가는 것들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은 이에게 추천하는 경로다.


2. 해미의 방 – 남산타워가 보이던 그 창 너머의 허무

“어릴 때 우물에 빠졌었어요. 근데 아무도 기억을 못해요. 나조차도.”
– 해미

해미가 거주하는 공간은 좁고 텅 비어 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남산타워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의 화려한 이미지와 연결된다. 

고시원의 삭막함과 반대로 멀리 보이는 남산은 너무 멀어서 오히려 더 쓸쓸하다.

📍 실제 촬영 장소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인근의 고시원. 남산타워가 창문에 비치도록 촬영되었다.

이 고시원의 방은 해미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장소다.

그녀는 존재하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림자 같은 삶'을 산다.

남산타워의 불빛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신호처럼 반짝이지만, 그녀는 끝내 그 불빛을 향해 닿지 못한다.

💡 야경 팁: 이태원 해방촌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벽화 골목을 지나 해방촌 오거리에서 남산타워가 보이는 뷰 포인트를 만날 수 있다.

영화 속 해미의 방은 아니더라도, 같은 감성을 체험할 수 있다.

저녁 시간대에는 불빛과 바람이 어우러져 그 고독함이 더욱 진해진다.


3. 수몰된 호수 – 증거도, 진실도 가라앉은 곳

“그녀는 사라졌고,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어요.”

이종수가 끝내 찾아간 곳, 바로 수몰된 호수

이곳은 해미의 실종과 그에 대한 확신 없는 분노가 농축된 장면이다. 

호수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 물속에는 진실도, 증거도 없다.

📍 촬영지는 경기도 연천군의 '백학저수지'로 추정된다.

잔잔한 물결, 하늘과 맞닿은 듯한 호수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영화에서는 그 평온함조차 불길하게 느껴진다. 

'진실은 수면 아래 있다'는 메시지를 공간으로 구현한 대표적인 장소다.

🚶‍♀️ 관광 팁: 연천 백학저수지는 캠핑과 산책 명소로도 알려져 있으며, 고요한 풍경을 즐기며 사색하기에 좋다. 주변에 있는 '연천 DMZ 평화관광'과도 연계해 DMZ의 역사성과 영화 속 철학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4.🔦 빛으로 완성된 불안의 미학 – 『버닝』의 조명과 색채

이창동 감독은 『버닝』에서 빛을 단순한 조명이 아닌 심리적 장치로 사용한다.

해미의 방 안, 어두운 고시원에서 창밖의 불빛은 그녀의 존재감을 말없이 부정하고, 벤의 고급 아파트에서는 따뜻한 조명이 마치 권력처럼 군림한다.

또한 파주 평야에서 해 질 무렵의 빛은, 세 명의 인물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긴장과 착시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빛은 무엇을 드러내기보다, 무엇을 감추는가를 중심으로 배치된다.


5. 마무리하며 – 불타는 것은 비닐하우스가 아니라 우리 자신

『버닝』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불안하고,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이 영화 속 장소들은 모두 실존의 흔적과 허무, 그리고 분노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관광지라는 단어가 낯설 정도로 조용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깊이 있는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목적지가 된다.

혹시, 당신도 잊힌 우물 하나쯤 가슴에 품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창동 감독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이 여행이 어쩌면 당신 자신을 마주하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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