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둠은 빛을 삼키고,
어떤 어둠은 빛을 기다린다.
버티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청춘, 그 이름을 우리는 ‘이지안’이라 부른다.
“버텨야죠. 살아야 하니까요.”이지안의 이 한마디는, <나의 아저씨>를 관통하는 숨겨진 울음이다.
1. <나의 아저씨>가 품은 세계
2018년,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매우 드문 결을 가진 작품이었다.
이 드라마는 화려한 사건도, 눈에 띄는 영웅도 없다.
그저 매일을 버티는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아주 천천히 살아내는 이야기다.
그 중심에, 이지안(아이유)이 있다.
20대 청춘임에도 희망 하나 없이 무기력하고, 어른들보다 더 지친 청춘.
그녀는 가난과 폭력, 냉혹한 현실 속에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
그런데도 이지안은 살아남는다. "버텨야죠. 살아야 하니까요." 이 말 한마디에, 그녀가 품은 모든 절망과, 그 절망 속에서 피워낸 조용한 저항이 스며 있다.
2. 아이유, 이지안이 되다
아이유는 이 작품을 통해 ‘가수 아이유’가 아닌 ‘배우 이지은’ 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나의 아저씨> 속 그녀는 말수도 적고 표정도 거의 없다.
하지만 눈빛 하나, 고개 숙임 하나로 모든 감정을 드러낸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느껴지는 삶의 무게, 누군가를 쳐다보는 눈빛에 스며든 불신과 두려움.
그 미세한 떨림이,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멎게 만든다.
특히, 이지안이 폭력을 당한 후 박동훈(이선균)에게 무심히 툭 내뱉는 대사가 있다.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없어요. 그냥 이익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이 대사는 이지안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녀에게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였고, 삶은 견뎌야 할 무언가였다.
이 대목에서 아이유는 분노도, 슬픔도 억누른 채 마른 표정으로 대사를 던진다.
그 차가운 무표정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눈물 한 방울 없이 절망을 전하는 연기.
아이유는 그렇게 ‘비명을 지르지 않고 절규하는 법’을 배워갔다.
3. 철학적 의미: ‘존재한다는 것의 무게’
<나의 아저씨>는 존재의 고독을 다룬다.
이지안은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다. 이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를 버티는 인물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했다.
"존재는 무거운 것이다. 존재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거기 있다."
이지안은 바로 그 ‘설명되지 않는 존재’였다.
행복해질 이유도, 살아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한 채, 그저 존재를 견딘다.
그런 그녀가 박동훈이라는 또 다른 고독한 인간과 만나면서, 처음으로 ‘함께 견디는 것’을 배운다.
<나의 아저씨>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 삶은 견딜 만해진다.’
4. 상징적 장소들: 서울, 골목, 그리고 지하
<나의 아저씨> 속 배경은 서울의 오래된 골목과 허름한 집들이다.
광화문의 빛나는 고층 빌딩도, 강남의 화려한 거리도 없다.
이 드라마는 서울의 가장 낮고 어두운 곳을 배경 삼는다.
특히 중요한 장소는 ‘지하방’이다.
이지안이 할머니와 함께 사는 작은 지하방.
습기 찬 벽지, 가스레인지 하나, 깨진 창문.
그곳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지하에 가라앉아 있는지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곳에도 작은 전구가 하나 켜져 있다.
희미하지만 꺼지지 않는 불빛.
그 불빛은, 이지안이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또 하나, 골목길.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은, 이지안의 인생을 닮았다.
곧게 뻗은 길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다 보면, 누군가를 만난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골목은 조용히 말해준다.
5. 결론: ‘버티는 삶에서, 살아내는 삶으로’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는 ‘버티는 사람’을 연기했다.
그녀의 이지안은 한참을 고개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그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때로는 그 작은 움직임 하나로 충분하다.
<나의 아저씨>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고통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누군가와 함께라면 견딜 수 있다."
아이유는 그 메시지를 누구보다 조용히, 그러나 깊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아이유는 단순히 "노래하는 가수"가 아닌,
"이야기를 살아내는 배우" 로 거듭났다.



